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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 look at myself in the mirror, we're in the same shape, and we're different at the same time.

웹툰작가 지망생의 삶

웹툰 작가가 된 지금 써보는, 3년간의 웹툰 작가 지망생의 삶.

Holmes 221b 2023. 9. 11. 02:23

웹툰 작가가 되었다.

나는 이날 적어도 감격의 눈물 몇 방울이라도 흘릴 줄 알았다.

대학교 합격자 발표하듯이 드라마틱 하게 찾아올 줄 알았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잔잔히 서서히.. 다가왔다.

그래서였을까. 오히려 더 냉정해졌고 현실적으로 와닿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여정을 글로 남기려고 한다.


첫 시작은 이랬다.


나는 중학생 시절, 동네 화실에서 다니며 서울 미술 고등학교의 진학을 준비하였었다.

동네에 그림 잘 그린다는 아이들은 모두 화실에 모였었고.. 그곳에서 여름엔 선풍기를, 겨울엔 난로를 쬐어가며 종이로 된 만화책을 서로 돌려가며 보고. 애니메이션 노래와 올드 팝송을 틀며, 저녁으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서로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애니메이터, 디자이너.. 당시 나루토를 좋아했던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

그리고 나는 서울 미술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였다.

그것이 내 인생 첫 실패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느 때처럼 점심시간에 잠을 자고 있던 나는,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다름 아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웹툰 중 하나인 독고에서 주최한 독고 팬아트 이벤트에서 내가 1등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 어렸던 나는, 평소 좋아하던 작품의 작가님들이 당선작에 남기신 작가의 말을 보고.. 웹툰 작가의 꿈이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렇게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 1년을 더 휴학하기로 결정하며 인생 처음으로 웹툰이라는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당연히 결과는 대 폭망이었다. 당시 친구들이랑 국내 여행까지 같이 가면서 나 혼자 숙소에 계속 남아 끝까지 마감을 지키며, 겨우 완성을 해서 제출을 했었고.

명절 때도 아이패드를 가져가 가족들 외식하러 나갈 때, 방에 홀로 앉아 마감을 지켰었다.

하지만 웹툰에 비최적화 된 장비(아이패드) 프로그램(프리미어 프로) 하루에 두 번 충전이 필수인 에플 팬슬..

가장 심각했던 건 내 스토리와 그림 실력.


정말 하루에 14~17시간씩 쏟아부으며 작업에 몰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그 해 3번의 네이버 지상 최대 공모전에서 광탈.

그렇게 낮아진 자존감을 주워 담으며 나는 터덜터덜 학교에 복학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 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있던 나는 수강신청 때 실수를 하여 결국 1학년의 전공수업을 들으며 부족한 4학점을 채우게 됐었다.

수업의 주제는 이러했다.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오시오.

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미술학원 때부터 말을 더럽게 안 들어 먹었던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무책임하게 그 해 작년 광탈한 웹툰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새로운 웹툰의 시나리오를 써가게 된다.

그렇게 시나리오의 피드백을 받게 된 그날.. 나는 혼이 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해당 수업의 교수님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나름 꽤나 열정적이시지만, FM 적인 부분이 있으셨고 몇몇 학생들은 이미 수업 중 실수를 저질러 크게 혼난 적이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교수님한테 들었던 말 한마디는 지금의 나를 있도록 하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었다.

약 5분간 꼼꼼히 내 스토리를 진지하게 읽으시던 교수님이 날 쳐다보시고 말씀하셨었다.

”재미있어“

나는 꽤 늦은 피드백 순서에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지만.. 보통 바로 어떤 피드백이나, 단점에 대한 지적이 들어오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내 예상은 빗나가 버렸고, 그때 처음으로 전문가에게 내 재능을 인정받았다.

게다가 그전까지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칭찬을 몇 번 들었었지만, 글을 잘 쓴다던지 스토리, 아이디어에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줄곧, 전문가라고 해봤자 입시미술 학원 선생님들이 내 당시의 한계였기 때문에 스토리에 대한 평가 자체를 받을 기회조차 잘 없기도 했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전문가는 아니지만, 딱 한 번 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공무원 7급에 합격한 친척 형이, 내 앞날이 걱정된다며 술을 마시고 내 스토리를 지적하며 나를 평가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준비하던 스토리는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주인공이 오랜 꾸준한 훈련과 학습을 통해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하는데 성공하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해 사회에서 성공하는 이야기였으나.

장애인을 소재로 삼으면 사회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 같다며 반대를 하는 반응을 보였고. 내가 모르는 국내의 만화 작가 이름을 언급하며, 나 같은 비 전공자도 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아는데 전공을 삼으려고 하는 네가 몰라서 되겠냐고 자신과 비교하며 나를 무시했었다.

어렸던 나는 그저 기분이 나쁘지만, 아무 말 하지 못했고 그냥 수긍하며 내 스토리에 가치가 없고. 재능이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이후 매우 흡사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 드라마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았다. 씨발


그렇게 과거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교수님의 인정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스토리에 대한 공부를 다듬어가며 졸업한 후 나는..

바로 다음 네이버 웹툰 공모전에 참가하지 않고 1년간 당시 과제로 냈던 스토리를 장편으로 완벽히 다듬고 설계하여 네이버 도전만화에 내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내 첫 실수였다.


해당 작품은 굉장히 마니아적이며 대중적이지 못했다, 상업과 클리셰 이 세계 판타지와 일진 사이다 장르로 가득하던 웹툰 판에 사이버펑크의 작품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1년간 시나리오를 다듬고, 1년간 웹툰화를 시도하며 공모전에 투고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한 나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약 2년간 한 작품에 올인하였고 준비하여 선보인 이 작품은 세상밖에 내보이지 못하고, 내 근성과 고집을 꺾으며 일단 잠시 중단하기로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었고, 무능했다.


그렇게 정들었던 작품을 묻어두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가며 그 다음 해의 네이버 웹툰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2023년도 1기 네이버 웹툰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총 3개의 작품을 투고하였는데, 1개는 이전에 포기했다고 했던 사이버 펑크 작품을 리메이크한 작품 1개. 또 다른 작품은 오징어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명~“ 이라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본래 2개만 투고할 계획이었지만.. 막상 두 작품을 올려보니 독자들 평가가 너무 심각하게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 결국 투고 마감 1일을 남기고 전날 새벽부터 마감일 오후 11시 30분시 까지 작업을 강행하여 약 26시간 만에 1화를 완성하여 한 작품 더 투고하게 된다.

하지만 또 다시 결과는 처참했다..

관심 구독자 수는 세 작품 다 10개를 넘지 못했고. 각각 댓글은 1~0개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분명 열심히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잘 고려해서 만들었는데..

다시 작년이 반복되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너무 고독했고, 괴로웠다.


절망스러웠다, 이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나 스스로가 너무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묵묵히 1차를 합격했을 때를 대비하여,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건 여담이지만 1차 합격 전.. 웹툰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 한 가지 루머가 돌았었다. 웹툰을 수정한 적이 없는데 수정했다는 기록이 남았다면, 네이버 웹툰 피디님이 1차 합격작으로 선정한 흔적이다. 라는 루머.. 물론 난 믿지 않았지만.. 내심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3 작품중 하나의 작품에 수정의 흔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차 합격 발표날.

하나씩 도전만화에서 베스트 도전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며, 1차 합격작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짜별로 합격작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곧 수정 흔적이 있던 작품의 차례가 되었다.. 만약 이게 된다면 2 3화는 무난히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내 작품이 올라간 날을 지나 다음 날 작품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단순히 루머였던 것이었다.

그때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분명 내 목소리는 좋지 않았고.. 이를 숨길 여유는 없었다. 아마도 이전에 말씀드렸던 1차 합격의 소식을 기대하시고 전화를 하셨던 것 같았지만, 내가 굳이 먼저 언급하지 않자 어느 정도 눈치를 채신 아빠께서는 별다른 질문 없이 대화를 끝내셨고..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멍했다. 난 또다시 실패한 것이다.

그때 엄마께서 족발을 사다 놓았으니, 나와서 먹으라고 말씀하셨고.. 터벅 터벅 걸어가 대충 몇 점 담아서 다시 책상으로 가져왔다.

그때 내 휴대폰에 떠 있는 알림 하나.

축하드립니다. "작품 명~" 가 베스트 도전으로 승급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나는 웃음을 되찾고.. 이 한 작품에 몰두하여 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으로 베스트 도전에 등록된 내 작품은 의외로 다수의 독자님들로부터 좋은 댓글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초반의 댓글은 내 초등학교 때부터 동창인 친구가 달아 주었긴 했지만. 아마 주변에 홍보도 많이 해주었던 것 같다.

친척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모두 관심 구독과 좋아요를 달아주며 응원해 주었다.

그만큼 더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이번 공모전만큼은 꼭 우수상이라도 수상해서 자랑스럽게 자랑하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다시 한번 네이버 웹툰 공모전에서 탈락하였다.

부모님도 ”생활비의 지원은 올해까지다.“ 라고 하시며, 이제 앞으로 나에게 기회나 시간이 더이상 없음을 다시 끔 상기시켜 주셨다.

그렇게 점점 어릴 적부터의 꿈이,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나는 그 직전의 순간이었다.


공모전이 끝나기 전 독자님들에게 했던 약속 한 가지가 있었다.

2차 결과가 나온 후 5화를 업로드하겠습니다.

그리고 5화의 회차 이름은, ”탈락“이었다.

실제로 작품 내 캐릭터 한 명이 탈락하는 내용이기도 했고, 현재 내 상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내 나름 의미를 전달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다음 공모전을 준비하던 중.. 어째서인가, 이번 공모전의 탈락을 알렸을 터인 5화에.. 다음 화가 궁금하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결말이 궁금하다는 댓글도 있었고, 다른 플랫폼에서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연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있었다.

독자님들에게 너무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동시에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웠다.

탈락한 작품임에도 관심 구독자 수가 더 올랐고, 조회 수와 좋아요 수가 꾸준히 올랐다.

결국 나는 작품을 떠나지 않고, 내 인생 처음으로 네이버라는 플랫폼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 작품의 완결을 궁금해하는 독자님들을 위해, 그리고 데뷔가 절박했던 나 자신을 위해.

네이버를 향하는 길을 잠시 떠나 다른 플랫폼으로 눈을 옮겨 투고를 하였다.


그렇게 결국..

난 처음으로 웹툰 피디님과 미팅을 진행하게 되었고.

한달만에 계약을 따내게 되었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의 꿈인 만화가, 아니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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